십여년 전 우리 다도해와 비슷한 유럽의 에게해에서 크루즈를 잠깐 했었다. 크루즈선이 섬에 도착할 때마다 각기 다른 그리스 신화가 소개되고 독특한 음식, 술, 그리고 풍습들이 관광객을 맞았다. 어떤 식물을 현관문 위에 걸어두면 귀신을 쫓는다는 유래도 소개해 주었다. 크루즈선 안에서는 그리스의 전통 춤이 공연됐다. 영화 ‘희랍인 조르바’에서 배우 안소니 퀸이 바닷가에서 추던 춤이다. 관람객들은 남자 댄서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배에서 내리기 전에 받아볼 수 있었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서구 고대문화와의 만남이었지만 그리스 신화를 알고 있는데다 희랍인 조르바 영화도 본 적이 있어 생소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우리 역시 귀신을 쫓는 풍습이 있고, 각 지역마다 많은 설화와 자랑할만한 음식도 있다. 그러나 섬관광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음식과 술은 물론 이야기나 작품도 없다. 여수를 중심으로 한 다도해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가 많다. 하지만 그것이 영국의 넬슨제독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로나, 수준 높은 애니메이션 등으로 소개되지 않아 외국인에게까지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 여수 엑스포나 다도해 크루즈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광주나 전남은 한국인의 고향답게 많은 설화와 ‘꺼리’가 남아있으나 다양한 이야기로 빛을 발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광주시의회 양혜령 의원이 “무등산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은 의미있는 일이다.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은 지난해부터 한 해 100명씩 스토리텔링 작가들을 길러내고 있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란 지역에 널려있는 문화관광자원들을 애니메이션, 영화, 뮤지컬과 같은 여러 가지 예술적 형태로 가공하여 전달하는 기법이다. 일종의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세계적으로 히트 친 애니메이션 ‘슈렉’도 당초 동화로 나온 원작을 이리저리 비틀고, 시대에 맞게 각색하여 제작된 것이었다. 아직은 초보단계이긴 하지만 이들이 우리 지역의 설화나 문화자원을 소재로, 또는 기발한 창작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세계적 작품을 내게 된다면 외국인들도 필자가 서양 고대문화를 부담없이 수용했던 것처럼 우리 문화를 생소하지 않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스토리텔링은 문화산업 발전 차원에서 대단히 의미있는 교육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차제에 기발한 생각으로 가득찬 청소년들에게도 기본적인 스토리텔링 교육을 펴 저변을 확대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김 성(47회)〈지역활성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