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47회)의 관풍(觀風) - 균형발전과는 멀어져 가는 ‘전력 활용 정책’
우리나라 전력정책은 최근 10년간 오락가락 해왔다. 최근에 또다시 상반된 전력 관련 정책이 결정됐다. 하나는 전력을 대량으로 필요로 하는 반도체클러스터(산업집적단지)를 수도권인 경기도 용인과 평택, 안성에 조성하겠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새 산업단지를 전력 생산지역에 세워 송배전선로 설치의 낭비를 없애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정책으로 균형발전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반도체클러스터 건설 vs 분산에너지법, 서로 모순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7일 ‘반도체클러스터 전력 공급 회의’를 열고 안정적 전력 공급이 반도체클러스터 성공에 핵심이라고 보고 우선 산업집적단지 조성 초기에 발전 설비를 추가로 세워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고 장거리 송전망 보강 작업도 병행하기로 했다. 반도체클러스터가 마무리되는 2050년까지 필요한 전력은 10기가와트(GW) 이상이다. 수도권 전력 수요량 39.9GW의 약 25% 수준이다.
이에 앞서 국회는 지난 5월 25일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약칭 ‘분산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전기가 생산되는 근거리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거리가 멀 경우엔 전기요금을 비싸게 부과한다는 것이다. 내년 6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은 발전소와 송전망 연결공사 과정에서 지역민과의 갈등이 깊어져 이를 해소하자는 차원에서 비롯됐다.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는 대부분이 비수도권에 자리잡고 있어 환경문제나 각종 규제로 주민들이 불이익을 받아왔었다.
“전기 과잉생산” 발전 중단시키면서 한 편에서는 “발전소 건설”
그런데 이 두 정책은 여러 가지 모순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반도체클러스터를 완성하려면 10GW 이상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 8개를 경기도 산단 인근에 건설해야 한다. 정부는 이 때문에 원자력발전소의 증설을 검토하고 있다. 송배전선로를 구축하는 일도 2050년까지 56조원(한전 추산)이 필요하다. 국비든 민간 투자금이든 300조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보니 비수도권에 투자할 비용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공장을 짓는 것 뿐만 아니라 여기서 일하게 될 인력과 그 가족 등 10만여 명을 위한 주택 교통 교육 문화 인프라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 비수도권 입장에서 보면 또 미래인력인 청년들을 수도권으로 빼앗기게 되니 지방소멸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런다고 이 클러스터에서 발생할 기업의 이익이나 중앙정부와 수도권 자치단체의 이익(각종 세금들)이 비수도권으로 대거 투입될 가능성도 없다. 정부는 WTO 비준 당시에도 공산품 수출로 벌어들인 이익을 농수산물 수입으로 피해를 본 지역과 계층에 투자(혹은 재분배)하여 균형발전을 이루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비수도권은 전기 남아도는데 ‘클러스터 조성’ 외면
객관적으로 보면 수도권의 기업들은 값싼 전기요금에 값싼 세금을 내는 비수도권으로 이전해야 정상이다. 비수도권은 전력자급률도 훨씬 높다. 2021년 기준으로 전력자급률이 서울은 11.3%, 경기도는 61.6%로 낮은 것에 반해 전남 184.7%, 부울경 136.0% 등으로 전기가 남아돌고 있다. 대부분 신재생에너지로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 대상이므로 국제경쟁력도 갖는다. 그런데 최근에는 전기를 보관할 수 없다는 이유로 태양광과 풍력발전 전력생산 중단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따라서 전기가 남아도는 비수도권에 전력수요가 많은 신설 산업단지를 배치하면 전력활용도 활성화되고, 수도권에 발전시설을 새로 짖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다 ‘사람’의 호흡을 만끽할 수 있는 쾌적한 환경도 갖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비수도권에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계획은 발표하지 않고 수도권에만 엄청난 재정을 낭비하고 있다. 기업들이 지방 이전을 꺼리는 이유 역시 인력 확보의 어려움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부동산값 인상을 기대하기 어렵고, 교육·문화시설 부족 등이 더 작용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국민과 최고 권력자의 정책 궤도수정만이 해결책
하여 정책결정의 권력자에게 다음의 혁신책을 제안한다.
첫째, 전체 국민과 최고 권력자의 철저한 정책 감독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는 균형발전이라는 목표를 충족시키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원래 집행의 주체인 공무원들은 정책집행에 대해 홀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유는 집행 참여자가 많고, 정책에 대한 기대가 사람마다 다양하다는 핑계를 대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특정지역의 교언영색(巧言令色)에 휘둘려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면 겉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는 커다란 위험요인이 쌓이게 된다. 그리고 결국 무책임하게 미래세대에게 이 과제를 남겨주게 된다. 우리의 화려한 발전상 이면에 곪아터진 양극화, 인구감소, 물질주의 팽배, 인성(人性)부재, 지방소멸 등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최고 권력자는 정책집행을 이끌기보다는 정책집행이 기본목표에 부합되는가를 끊임없이 감독하고 궤도수정을 해야 한다. 국민도 정책집행의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또 과거에는 공무원만이 정책을 집행했으나 오늘날에는 시민사회단체도 집행에 참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정책집행의 아이디어 제공자이자 정책의 옴부즈맨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정책집행이 과연 이런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야 한다.
전력자급률 높은 지역에 계획도시 시범건설을
둘째, 정부가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역의 거점 한 곳을 지정하여 계획도시를 시범 조성하는 일이다. 기업에 저렴하게 부지를 제공하고 전기요금과 지방세도 할인해 준다. 주말이면 ‘불꺼진 도시’가 되지 않도록 강남 수준의 교육·문화·유통 관련 서비스시설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분당이나 일산처럼 신도시를 성공적으로 조성했고, 계획도시 자체를 통째로 수출하기도 하는 나라이다. 현재의 혁신도시들이 비어있는 것은 도시에 매력을 주는 최고의 서비스 시설을 배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위공무원과 정책기획자들은 이미 이를 알고서도 비수도권이 활성화되면 자신들의 부동산 이득이 줄어들고, 중앙정부의 권력이 약해져 분할통치(divide and rule)가 어려워질까봐 방관해 온 것이다. 최고 권력자는 이를 간파하고 혁신해야 한다.
정책결정위원회, 수도권 : 비수도권 5 : 5로 구성해야
셋째, 정부의 정책을 결정하는 모든 위원회에 수도권 거주자와 비수도권 거주자가 5 대 5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결정 위원회에는 수도권에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공무원이나 학계 인사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이해관계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경제계와 언론에도 작용하여 비수도권은 점차 더 불균형의 나락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중앙정부가 위원회 개최 횟수가 적어서, 출장비가 적어서 비수도권 인사를 배제했다는 핑계도 혁신해야 한다.
수도권에 300조원을 투입해 클러스터를 조성하면서 비수도권에는 막연한 무지개 공약으로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은 잘못이다. RE100에 유리한 태양광이나 풍력발전까지 가동을 제한시키는 것도 올바른 정책이 아니다. 전기가 남아도는 지역에 클러스터를 배치하면 모두 해결된다. 이 길만이 재정의 낭비를 막고 균형발전을 가져오는 길이다.
김 성(시사평론가)
< 데일리스포츠한국 2023.08.0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