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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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6월 제1차 동맹휴학
광주고보(광주서중·일고전신)와 일인 선발팀과의 야구시합때 일본인 단장의 횡포로 인한 충돌로 3개월간의 동맹휴학(4명 퇴학).
1926년 11월 3일 성진회 결성
광주고보생 9명과 광주농고생 7명이 항일 비밀결사 조직.
1928년 6월 이경채사건
반일 유인물 살포사건 으로 구속 퇴학.
1928년 6월 26일 제2차 동맹휴학
광주고보생 「이경채(李景采) 사건」의 진상규명과 식민지교육에 항거한 맹휴(27명 퇴학, 281명 무기정학).
1929년 3월 유시퇴학
일제의 압력에 의한 학교장의 「유시퇴학」에 항의한 사건으로 4명의 학생이 구속 기소어 실형 언도.
1929년 6월 독서회 결성
광주고보 졸업생 장재성(張載性)과 왕재일(王在一)의 주도하에 광주농업학교, 광주사범학교, 광여고보(현 전여고) 학생이 「독서회 중앙본부」를 결성하여, 서울의 「신간회」등과 연락 활동.
1929년 9월 광주학생 소비조합 결성
광주고보, 광농, 광사, 광여고보생이 결성하여 「독서회」와 함께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의 고취 등 항일운동 전개.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 항일독립운동
10월 30일의 나주역 충돌사건을 시발을 계기로 한·일 학생간의 쟁투가 벌어지다가 11월 3일, 명치절(일본국경일)에 광주농업학교, 광주사범학교, 광여고보생들까지 합세하여, 일본인 신문사를 습격하는 등. 대대적인 시위가 국내외로 파급되어 1931년 5월말까지 320교에 5만 4천여명이 참가하여 권고퇴학 580여명, 자진퇴학 350여명, 무기정학 2,300여명, 피검자 1,640여명.
1941년 12월 서중 무등회 결성
「독서회」의 맥락을 이은 비밀결사조직 활동.
1941년 12월 제2차 광주학생독립운동
광주서중학생이 주동이 되어 거사한 이차 학생독립운동으로 징역 22명, 퇴학 70여명, 정학 120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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