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청계천변을 따라 걷다 보면 삼일교 남단 한화빌딩 앞의 자그마한 광장에서 뜻밖의 구조물, 즉 베를린 장벽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통일을 이룬 독일의 베를린시가 아직까지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시에 분단과 통일의 상징물인 베를린 장벽의 원형 3개를 2005년에 기증한 것이다.
처음 접한 사람에겐 매우 특이한 설치미술처럼 보이는 베를린장벽은 그 존재를 알게 되는 순간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또한 베를린장벽 옆에는 베를린을 상징하는 동물인 곰의 조각상이 함께 있어 ‘베를린 광장’은 청소년들도 즐겨 찾는 서울의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베를린에 있어야할 독일의 역사·문화적 유산이 지구의 반대편까지 옮겨져 와 우리에게 냉전의 아픈 기억과 통일의 기쁨, 그리고 나아가 인류의 평화와 교류의 가치를 생각하게 해주는 살아있는 교과서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이라는 나라가 상당히 고차원적인 문화교류를 하고 있음을 느낀다.
베를린장벽은 20세기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세계적인 사적으로서의 가치가 있고, 따라서 독일 통일 후 장벽의 철거문제를 놓고 의견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다.
장벽의 완전한 보존을 주장하는 의견도 많았지만 독일인들이 내린 최종 결정은 독일의 역사·문화적 자산인 장벽을 베를린이라는 공간에 고정시켜 가두어두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세계와 교류하고 소통하는 역동적인 방법을 선택하였다.
즉 40여km에 이르던 베를린장벽을 대부분 철거하였고, Muehlen Strasse 쪽에 남아있는 1.3km 정도의 장벽에는 여러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 넣도록 하여 일종의 전시장이 되게 함으로써 전 세계인이 찾아오는 명소로 가꾸었다.
그리고 철거된 부분과 잔해들은 평화와 화합의 상징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기증되거나, 국제적인 예술가들에 의해 세계 평화와 화해, 그리고 자유에 대한 염원을 담은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나 세계 각국에서 전시되어 그 상징적 의미를 전파하도록 했다. 어느 예술가는 이렇게 지적했다. “해체되기 이전의 베를린 장벽은 분단과 아픔의 상징이었지만, 해체되어버린 베를린 장벽은 이제 통합과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 광주에서는 옛 전남도청별관의 철거문제를 놓고 원론적인 자기주장만이 되풀이됨으로써 일년이 다 가도록 대립과 갈등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베를린장벽의 사례는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구도청에는 5·18사적이 8개가 있고, 그 중 7개는 완벽하게 보존되고 오직 별관 하나 만이 철거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별관의 문제를 베를린장벽의 모델을 따라 접근해보면 어떨까? 나머지 구도청 사적이 모두 보존되므로 별관은 광주가 아시아와 교류하고 소통하는 매개로서의 역할을 부여하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광주가 아시아와 교류하고 소통하는 데 있어 5·18의 정신과 우리가 이룬 민주화의 경험이 많은 자산임을 잘 안다. 그러므로 서울에서 만나는 베를린장벽이 우리에게 통일의 염원과 통일의 희망을 일깨워주는 것처럼, 해체된 별관이 민주·평화·인권의 염원을 담아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민주화를 갈망하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새롭게 태어난다면 광주가 아시아문화교류의 중심으로 우뚝 서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도청별관의 문제도 궁극적으로는 건물이 갖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야기된 것이기에, 문제의 해결도 결국은 건물에 담긴 의미와 정신을 우리가 아시아와 교류하고 소통하며 기억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사람이 죽어도 이름을 남기면 역사 속에 살아남듯이, 건물도 해체되어 새롭게 태어나 영원한 상징으로 아시아인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아픈 역사의 흔적에 희망의 메시지를 불어넣는 아름다운 역설이 아닐까?
/최 협(39회)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