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47회)의 관풍(觀風) - ‘봉사은행’ 활성화로 그늘진 사회에 건강한 빛을 비추자
지난 17일 서울 강남의 한 고층 건물에서 10대 여학생이 추락해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이 학생은 자신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라이브 방송을 켜 둔 채 투신을 예고하고 실행에 옮겼다. 그래 수십 명이 동시 접속해 지켜봤다. 경찰과 소방대원이 출동했으나 막지 못했다.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몰래 카메라가 유행하는 시대라지만, 실시간으로 10대 소녀의 죽음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지켜보게 된 ‘인간성 상실’의 사회풍조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비극적인 사망사건을 거의 매일 접하면서 살고 있다. 시민이 뻔히 보고 있는 강남대로에서 여성을 납치해 살해하는가하면, 큰 회사 프로그램 개발자가 상급자의 비인격적인 갑질에 자살을 선택했고, 전세사기를 당한 젊은 여성도 같은 방법으로 사망한 사건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성장통 앓고 있는 한국사회, 비뚤어진 시대관 팽배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된 대신 심각한 성장통(成長痛)을 앓고 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뒷골목에는 빈곤과 정신적 공황상태 속에 방황하는 사람들도 적잖게 남아있다. 너무 빨리 달려왔기 때문이다. 빈부격차로 인한 극단적 양극화와 지나친 물질주의에 매몰되고 ‘수저계급론’이 고착화되고 있다. ‘가난탈출’에만 메달려 온 베이비붐 세대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성장한 MZ세대 사이에도 생활방식이나 사고(思考)에 커다란 간극(間隙)이 생겨났다. 교육도 한 몫을 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물질적으로 풍요로는 삶만을 추구하는 바람에 비뚤어진 사회가 되고 말았다. ‘학폭’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권력과 재판을 동원했던 전직 검찰간부의 모습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극단의 사회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인간으로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마땅히 갖추어야 할 인의예지(仁義禮智)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까지 다른 사람이나 다른 국가의 인권이나 재산을 짓밟은 적은 없었나를 반성하며 배려하는 일도 찾아서 실천해야 한다.
봉사활동, 남을 기쁘게 하고 자신에게 행복 안겨줘
그것이 우리 사회를 제자리에 바로 세우는 일이다. 필자는 그 방법의 하나로 ‘봉사활동’을 실천할 것을 제안한다. 봉사는 남을 기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 “나눠 주니 행복했다”는 봉사자들의 경험담이야말로 봉사가 갖는 마력(魔力)이다. 자발적인 봉사자들은 상을 받기 위해 봉사에 참여하는 건 아니다. 자신을 변화시켜보기 위해, 새로운 자신을 찾아보기 위해, 이로 인해 자신의 행복을 얻기 위해 나서고 있다. 내 것이 넘쳐 나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갖지 못한 사람의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나누는 것이다. 봉사는 자발성, 이타성(利他性), 무보수성, 계속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오래 전부터 두레, 향약, 품앗이 전통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자원봉사활동기본법을 바탕으로 다양한 봉사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2008년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고,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2022년 이태원 압사사고 때에도 봉사활동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시대적 변화에 맞게 봉사정신도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 보상을 목적으로 봉사하는 건 아니지만 정착되려면 ‘사회적 보상’도 제도화되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한다.
봉사 마일리지 적립하는 ‘봉사은행’ 운영을 … 노후에 활용
첫째, 봉사 마일리지 제도를 다양화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봉사은행’ 설치를 제안한다.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은 최근 한 신문 칼럼에서 성인들의 봉사활동시간을 자신의 노후에 요양 서비스가 필요할 때 그 시간만큼 간병 서비스를 무료로 받도록 하자는 제안을 했다. 예를 들어 영유아를 돌보는 어린이집은 보육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사회활동에 바쁜 젊은 부부들은 손자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돌봄 서비스를 24시간 가능하게 해 보자는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기 손자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저녁에도 보육원에서 여러 아이를 함께 돌보아 주는 보육 봉사활동을 하고, 마치 헌혈한 것처럼 그 봉사시간을 인정받자는 것이다. 봉사활동 시간을 헌혈증서처럼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에 기록해두자는 것이다. 물론 현재도 자원봉사지원센터나 일부 시군별로 마일리지 제도나 인증제를 두어 적립해 두었다가 필요에 따라 사용하거나, 협약업체의 상품을 할인받기는 한다. 그러나 이를 법으로 규정하고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한다면 정부가 모두 껴안고 있는 복지재정의 부담을 줄이면서 사회적으로는 상부상조하는 미풍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대학입시뿐만 아니라 공직진출이나 취업 및 승진에도 봉사활동에 따른 가산점을 주고, 기부금처럼 소득공제 대상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때가 왔다. 물론 객관적이고 공정하면서 투명성을 전제로 도입되어야 한다.
학교 봉사활동 의무제도 ‘정상화’로 인성 함양해야
둘째, 학교에서의 봉사활동도 정상화 시켜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초·중·고등학교 의무 봉사활동시간을 학교 안에서 잡초 뽑기나 청소활동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취지라고는 하나 학생들이 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통해 약자를 배려하고, 남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는 크게 벗어나는 일이다. 요양병원이나 불우시설 방문 등을 활성화하고, 경험한 내용을 발표하여 주변 친구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한다. 학교 밖에서의 봉사경력을 신뢰하지 못해서, 또는 외부에서의 시상(施賞)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학교생활 기록에서 제외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형식적인 봉사활동만 체험한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도 생각해야 한다. 그 때의 일탈행위를 줄이기 위해 학교 제도부터 정상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성교육이다.
정부의 캠페인과 국민교육이 활성화 관견
셋째, 정부도 나서서 봉사활동에 대한 국민캠페인과 국민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나설 의욕을 가진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므로 이들을 위하여 봉사할 장소와 방법, 요령, 에티켓을 가르쳐야 한다. 전문단체가 교육을 운영하고 정부는 나이, 경험, 분야에 맞게 조직을 짠다면 많지 않은 재정으로도 봉사활동이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예기치 못한 금융위기를 맞이하게 되자 미국 국민에게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모든 사람의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봉사하는 것이 곧 아메리칸 드림”이라며 동참을 호소했다. 정부만으로는 힘이 부치므로 민간이 함께 나서 도와야 한다고 한 것이다. 싱가포르의 자원봉사축제 슬로건은 ‘옷을 벗자(Dress Down)’였다. 웃통을 벗어 제치고 오늘 하루만은 남을 위해 봉사하자는 뜻이었다. 미국의 봉사축제일은 ‘바꾸는 날’(Make Difference Day)이었다. 다른 이웃을 위한 봉사를 통해 자신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자는 의미였다. 국제NGO인 ‘세계친절운동’은 친절운동 참여 방법 10가지를 제시했다. 이웃집 문 앞에 꽃이나 식사 초대장 같은 특별한 것 놓아두기, 아이가 싫어하는 자질구레한 일 한 가지 해주기, 자선기금에 기부하기, 누군가에게 감사편지나 말 전하기, 톨게이트에서 뒤따르는 차의 요금을 대신 내주기, 쓰레기 줍기, 희망 메모를 만들어 동네에 배포하기, 10명에게 웃어주기, 노인이나 연장자 방문하기, 친절행동 리스트 만들기 등이다. 어렵거나 부담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봉사활동이 넘치는 사회야말로 따뜻한 마음이 뿌리내린 건강한 사회이다. 사회불안 요소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 정부 혼자서 떠안고 있는 복지수요를 덜어주고, 상부상조하는 사회도 만들어갈 수 있다.
‘봉사은행’을 통해 우리 국민이 모두 나서서 사회의 어둡고 그늘진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돌보며 한줄기 빛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 성 (시사평론가)
< 데일리스포츠한국 2023.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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