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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47회)의 관풍(觀風) -지금은 R&D 세계대전 시대 – 예산 감축해도 ‘선진국’ 지위 유지할 수 있나?
작성자운영자 작성일2023/11/17 10:28 조회수: 95

김성(47회)의 관풍(觀風) -지금은 R&D 세계대전 시대 – 예산 감축해도 ‘선진국’ 지위 유지할 수 있나?

‘경쟁력’과 ‘미래’를 이야기할 때 필자가 자주 꺼내 든 사례가 금속활자이다. 지난 1995년 2월 미국의 엘 고어 부통령은 유럽의 장관들과 함께 ‘정보고속도로’ 조성을 협의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겐 필수가 된 ‘초고속통신망’을 말한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 이용이 활발하지 않아서 유럽의 장관들은 엄청난 투자비용에 반신반의했다. 이때 고어 부통령은 한국의 과거를 사례로 들었다.

국제사회에서 실패 사례 된 ‘금속활자’

고어 부통령은 “한국은 금속활자를 서구보다 훨씬 빨리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금속활자를 이용해 인쇄한 우리나라 최초의 책은 고금상정예문(1234년)이나 현존하지 않는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된 직지심경은 1377년에 발간됐다. 구텐베르크가 1450년 금속활자로 성경을 출판하기 시작했으니 우리나라보다 73년~216년 뒤졌다. 그 이전에 성경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자 사치품이었다. 그러나 성경이 대량 출판되면서 일반인들도 성경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양서와 철학서가 활발히 인쇄되면서 대중을 깨우치는 계몽주의 사상이 꽃을 피웠다. 프랑스대혁명, 증기기관의 발명 등 서구사회의 변화는 대량으로 출판된 책에서 비롯됐다. 반면 한국은 대중소설이나 계몽적인 철학서 발간이 경우에 따라선 통제됐다. 하여 양반을 제외한 국민은 문맹(文盲)이 됐다. 고어 부통령은 “미래의 금속활자는 바로 정보고속도로”라며 서구유럽이 한국처럼 되어서는 안된다고 유럽의 장관들을 설득한 것이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유산이 서구 정치지도자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외환위기 속 초고속통신망 개통 – 정보화 앞당겨

다행히, 정말 다행히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가운데서도 초고속통신망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서둘러서 구축하여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외국인들이 아직까지도 한국을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이 초고속통신망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이내 국가로 발돋움한 것도 이를 이용해 수많은 연구자들이 연구개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제 초고속통신망은 한국의 성공사례로 개발도상국에 회자하게 됐다.

결국 근대화기 금속활자는 민주화, 산업혁명, 과학의 발전을 가져오는 ‘지식패권’의 역할을, 불과 40~50년의 금속활자는 유전자공학은 물론 정보와 물류의 국제화를 가져온 인터넷을 통해 ‘정보패권’ 역할을 했다.

미래의 금속활자는 R&D통한 ‘과학기술’창출

그렇다면 지금 막 시작된 미래의 금속활자는 무엇일까. 이제는 과거 지식이나 정보처럼 단순한 게 아니라 화학, 핵물리학, 군사, 생물, 농업, 환경, 기후 분야에 이르기까지 세분화됐다. 하여 누가 이 많은 금속활자들(과학기술들)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기술패권’을 쥐게 된다. 4차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를 보자. 미국은 과거 최고로 잘 나가고 있던 일본의 반도체산업 성장에 제동을 걸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와 타이완이 그 틈을 비집고 반도체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지금은 중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반도체 방어선’을 치고 기술유출을 막고 있다. 니켈 등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원천소재가 되는 희귀금속의 경우도 한편으론 세계가 자원확보에 나서면서 다른 한편으론 희귀금속을 대체할 새로운 소재의 창출을 위한 연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농업분야도 식량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유전자 연구, 종자개량, 재배혁신 등이 연구되고 있다. ‘기술패권’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기술패권’은 R&D(연구개발)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고는 세계의 중심에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세계가 소리없는 R&D전쟁에 들어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때 GDP 대비 R&D투자비율 세계 2위 – 100조원 시대 앞두고 후퇴

우리나라가 2020년을 전후하여 선진국(인구 5,000만명 이상 소득 30,000달러 이상 국가)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R&D를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투자 비율이 4.8%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였다.

그런데 정부가 이러한 세계적 추세와는 역행하여 2024년 예산안에서 R&D예산을 올해 31조1,000억원보다 16.6%가 줄어든 25조9,000억원으로 편성했다. R&D예산이 줄어든 것은 1991년 이후 처음이다. 여기에다 ‘이익카르텔’이라는 지목까지 받자 과학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예산이 과거처럼 편성됐더라면 R&D 전체예산은 정부투자 30조원 이상에 기업 투자 70조원 이상으로 R&D 투자가 100조원을 넘어 세계 1~2위 반열에 오르게 되었을 것인데 기대가 무너졌다. R&D예산의 축소는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이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를 제로베이스(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자 정부가 예산편성때 “낭비적 요소나 비효율적인 부분들을 조정”하면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인적자원’ 활용해 R&D로 ‘기술패권’동승해야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적 상황을 살펴보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자명하다. 우리나라는 희귀금속·석유, 심지어는 식량자원도 부족해 수입에 의존해 왔다. 국토도 넓지 못하다.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도 우리나라는 자원을 수입하고, 선진국의 기술을 활용하여 우수한 인적자원들이 이를 가공하고 수출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선진국 기술을 활용만 하는 ‘추격형 전략’으로는 국제적으로 끊임없이 패널티를 받아 살아남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자원인 인적자원으로부터 창출되는 기술로 경쟁하는 ‘선도형 전략’을 택해야 한다. ‘기술패권’시대에는 이것만이 우리가 살아남는 길이다.

청년연구자는 미래의 희망 - 비정규직·철야실험하는 그들을 실망시켜선 안돼

그러한 점에서 정부의 R&D정책에 다음을 제안한다.

첫째, 미래 한국을 짊어질 과학기술 연구자들의 의욕을 꺾어서는 안된다. 전국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청년 연구자 중에는 비정규직 대우를 받으면서도, 밤을 세워가며, 라면으로 식사를 때우면서 연구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수입이 보장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의치한약수로의 전과(轉科)도 마다하고 실험실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성공’에 인생을 걸고 외롭고 기나긴 여정을 걸어가고 있다. 이들을 통해 과학의 기초가 튼튼해지고, 우리의 여망인 노벨상 수상 기회도 기대하게 된다. 연구실이 문을 닫으면 새로운 연구자를 키워내기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단지 산업과의 연결이나 상품개발이라는 성과에만 매달려 R&D를 편중투자를 하면 우리의 미래는 2류 국가를 벗어날 수 없다. 자원과 기술이 적은 우리나라가 갈 길은 우수한 인적자원의 R&D를 통한 과학발전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느 구름에 비내릴지 모른다’ - 고른 투자 이뤄져야

둘째, 전국 곳곳의 연구실에 R&D투자가 고루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정리한 자료에 의하면 2022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하는 R&D예산 2조8,181억원 가운데 51.6%를 서울·경기 등 수도권이 차지했다. 수도권 비중은 2018년 47.2%에서 점차 늘어났다. 반면 비수도권은 충남이 8.6%, 경남 7.3%였다. KAIST와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있는 대전도 2018년 8.4%에서 2022년 7.1%로 감소했다. 그밖의 지역도 특화된 연구개발 분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별하고 있다. ‘어느 구름에 비 내릴지 모른다’는 속담처럼 예상치 못한 분야의 과학기술도 시대상황에 맞아떨어지면 세계적인 대박을 낼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산업경쟁력이 약한 지역의 R&D투자도 활성화해 ‘잠재된 과제’에 희망을 불어넣어 불균형을 극복하도록 해야 한다.

‘성과주의’보다 ‘창의성’ 존중해 도전정신 샘솟도록

셋째, 창의성이 보장되는 R&D가 이루어져야 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초전도체가 발견되었다고 하여 세계적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아직은 만족스러운 결과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러한 성과도 창의성이 보장돼야 가능하다. ‘기술패권’ 시대에는 성과보다는 창의성이 중요하다. 창의성은 도전정신에서 나온다. 정부의 강요나 성과측정같은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책상머리에 앉아 예산을 주무르는 정치인과 행정가들은 시대변화를 인식하여 지루하고 예측할 수 없는 과업에 대해서도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연구실과 행정이 시대변화를 인식할 때 김○○법칙, 이○○이론, 박○○시스템 같은 연구성과나 세계적인 ‘기준’이 나올 수 있다.

김 성(시사평론가)

< 데일리스포츠한국 2023.0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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