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47회)의 관풍(觀風) - 코로나19보다 더 독한 ‘수도권병(病)’을 예방할 강력한 백신은?
한 시골 군청의 공무원이 하소연을 해왔다. 정치판 돌아가는 걸 보니 복장(腹臟)이 뒤집힌다는 거였다. 자기가 군무하는 지역의 인구는 과거 10만이 넘었는데 이제는 ‘10만’자를 떼어내고도 부족해 3만이 무너질 위기라는 것이다. 그래 3만 지키기 아이디어 모집, 떠나려는 병의원 잡아두기, 늘어나는 폐가 감추기 등 생존을 위해 별의별 일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기도 김포시는 집값 상승 덕을 보려고 서울시 편입을 요구하고, 집권당 대표까지 덩달아 박자를 맞추고 있으니 화가 나지 않겠냐는 거였다. 지방도 잘 살게 해주겠다고 큰 소리 쳐온 정치인들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예전보다 10만이 줄어든 ‘시골’, 이젠 3만 지키기에 안간힘
지방 대도시에 사는 60대 은퇴 부부는 아직도 자식들 걱정이 앞선다. 2남1녀 가운데 장남이 서울까지 진출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좁은 아파트에서 손자 남매를 키우면서 영끌 빚을 값느라, 자식 과외비 지출하느라 여유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딸은 그런대로 경제적 어려움은 없으나 자기 수준에 맞는 남자를 찾지 못해 결혼을 못하고 있다. 지방에 변변한 직장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아들은 수도권 중견 제조업체에 취직하긴 했으나 일찌감치 미혼을 선언했다. 날로 치솟는 집값을 저축하기 힘들어 아예 포기하고, MZ세대답게 캠핑 취미에 빠져있다. 이러다 보니 여러 손자들이 재잘대는 소리를 듣는 것을 포기했다. ‘노인들만 사는 나라’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해 걱정이다.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의 상반된 발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하면서부터 지방회생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국민이 어디에서 살든 공정한 기회를 누리는 지방 시대를 열겠다”고 천명한 것을 시작으로 “지방정부 권한 이양에 혁명적 생각을 갖고 있다”(2023년 2월 제3회 중앙지방협력회의)고 했다. 가장 최근인 11월 2일 제1회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에서도 “중앙정부는 쥐고 있는 권한을 지역으로 이전시켜 지역이 교육 혁신을 주도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이처럼 지방회생을 강조하던 비슷한 시기인 11월 초, 집권당인 국민의힘 김기현 당대표는 김포시장으로부터 ‘서울 편입’제안을 받고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며 당내에 ‘수도권 주민편익 개선 특별위원회’를 조직했다. 또 다른 지역도 포함시킬 가능성을 언급하자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시군들도 일제히 서울편입을 건의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국민들을 헷갈리게 했다.
‘블랙홀’ 되어버린 수도권
지난해 8월 산업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전체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50.3%가 살고있고, 1000대 기업의 86.9%가 주소를 두고 있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도 3,710만원으로 비수도권보다 300만원 많았고, 단위면적당 주택 매매가격은 비수도권보다 3배 이상 높았다. 한국은행의 ‘지역간 인구이동과 지역경제’ 보고서를 보면 지난 10년간 수도권으로 순유입된 20대 인구가 59만명을 넘었다. 순유출은 경남(-10만5000명), 경북(-9만명), 전남(-7만6000명), 전북(-7만6000명), 대구(-6만6000명), 부산(-5만5000명), 광주(-3만4000명) 순이었다. 청년들이 수도권에 집중하다 보니 무한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대안은 비수도권에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거점도시를 구축하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
여러 정책제시보다 ‘대통령의 의지’가 더 중요
한편 지방시대위원회는 지난 1일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기회발전특구, 교육발전특구, 도심융합특구 등 각종 특구를 조성해 생활인구를 늘리고, 지방에 활력을 가져오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기회발전특구는 지방으로 옮기는 기업에 법인세와 취득세, 재산세, 양도세, 상속세 등 다양한 세제혜택을 주기로 해 자치단체들이 솔깃해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부처가 책상머리에서 쏟아내는 정책보다 대통령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동안 지방부흥책에 대해 중앙 관료들은 “검토해 보겠습니다”“시범실시 후에 확대하겠습니다”를 입에 달고 지내왔고, 대통령은 이런 농간에 넘어가면서 흐지부지되어왔다. 하여 대통령이 강단(剛斷)있게 밀어붙일 수 있는 세가지 방법을 제안해 본다.
윤, “말로만 지방 외치는 전철 안밟을 것”약속 … 이젠 실천을
첫째, 대통령은 중앙 관리들의 말보다 그동안 마음 속으로 다짐해 왔던 ‘지방시대’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여야 한다. 시·도지사들은 “중앙부처가 지방정책을 주도하다 지방소멸을 가져왔으니 지방정책의 주도권을 지방으로 넘겨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행정의 ‘목줄’을 쥔 행자부는 중앙지방협력회의 안건을 정하는 사전 실무회의에서 동의를 해주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협의되지 않은 안건은 논의하지 않는다’는 규칙에 막혀 회의에서 아예 거론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귀를 막고 있다. 자치단체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방환경청, 지방국토관리청 등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지방이전도 정부의 각 부처가 단합해 거절하고 있다. 5천 개가 넘는 특별지방행정기관 조정 없는 행정개혁은 헛일이다.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모든 권한을 중앙이 움켜쥐고 말로만 지방을 외친 과거의 전철을 절대 밟지 않을 것”(2023년 9월 14일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의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선포식에서)이라고 했다. 그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기 바란다.
중앙지방협력회의, 의결기관으로 제도화해 ‘여야협치’ 모색해야
둘째,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중앙지방협력회의도 의결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 현재는 정부가 만든 정책이나 법률안을 국무회의가 의결하고 국회로 보내 입법화 과정을 밟는다. 이제는 시·도지사, 지방자치4대협의회장이 참여하는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제도적으로 제2 국무회의로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은 장관들도 이 중앙지방협력회의에 모두 참석하여 시·도지사와 토론을 하라고 지시했다. 국무위원(각 부처 장관)들은 자기 분야의 전문적 정책을 제시하긴 하지만 이 정책이 다른 정책과 어떤 충돌을 가져올지 잘 모른다. 반면 시·도지사와 4대협의회장들은 평소에 국민과 스킨십 자치행정을 해왔으므로 정책 간의 충돌이나 모순점을 잘 파악할 수 있다. 현재 시·도지사와 4대협의회장은 집권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민주당 출신이 모두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제2 국무회의에서 정책안이 통과되면 국회에서도 다수당인 민주당의 협조로 의결하는 일이 쉬어질 수 있다. 지방을 살리자는 목표는 양당 모두 같기 때문이다. 이런 협치를 통해 정치 선진화도 모색할 수 있다.
잘못된 정책 1개, 과감히 중단해 ‘개혁의지’ 보여야
셋째, 대표적으로 잘못된 정책 하나를 콕 집어 과감히 중단하는 개혁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 다른 정책입안에 긴장감이 생기고, 지방회생에 맞는 정책을 내놓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0조 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있는 한전이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송전선 설치 공사에 2050년까지 56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를 당장 취소해야 한다. 전남·북과 제주도, 경남·북과 강원도는 풍력발전과 태양광 등으로 많은 신재생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수요가 없어 가동을 중단시키기까지 하고 있다. 대신 수도권은 전기 자급률이 낮아서 막대한 돈을 들여 수도권으로 전기를 끌어오겠다는 것이다. 어이없는 일이다. 전기가 생산되는 곳에 공장을 지으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한전은 송전선 설치비를 줄일 수 있고, 지방에는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 인구가 늘고, 여기에 따른 교육·문화·의료시설도 늘어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수도권 집중도 완화 시켜 일거삼득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 좋은 정부 관료들이 그걸 못하는 이유는 뭘까. 수도권 부동산 투기꾼들의 집값·땅값 지키기, 떡고물이라도 떨어질 것을 기대하는 주변부 사람들, 내 재산을 늘리려는 관료들의 잔머리들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송전선 낭비계획’을 대통령이 당장에 중단시키면 대기업과 협력업체, 정부는 지방이전과 인력수급에 알맞는 새로운 계획을 내놓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기업이 중앙정부를 주물럭거리는 일을 막고, 수도권의 부동산 투기사태도 진정시킬 수 있다. 이럴 때 대통령이 특히 강조하고 있는 ‘기회발전특구’도 자연스럽게 활성화 될 것이다.
시·도지사협의회 의장인 이철우 경북지사는 “이번 기회에 수도권에만 사람이 몰리는 ‘수도권병’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했다. 수도권병은 ‘돈’만 좇고 이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코로나19보다 더 강한 전염병이다. 대통령이 강력한 백신을 주사하여 이 병을 잡기를 기대해 본다.
김 성(시사평론가)
< 데일리스포츠한국 2023.1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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