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47회)의 관풍(觀風) - 22대 총선에서 빠진 것 – ‘청년정치인 등용’과 ‘토론문화’
선거의 지리적 기준이 되는 선거구 획정이 선거일 41일을 앞둔 지난 2월 29일에야 겨우 국회를 통과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는 총선 1년 전에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 그러나 19대 때에는 선거 44일 전에, 20대 때에도 42일 전에야 결정했으니 국회의원들이 자기네 선거를 가지고 이렇게 상투적으로 늑장을 부리는 무법자(無法者)가 됐다. 그들은 나라의 살림을 결정하는 2024년도 예산안도 법정시한(12월 2일)보다 19일을 지나 처리했다. 이 역시 상투적이 됐다. 서민들은 돈 1만 원만 훔쳐도 감옥에 가는 형편에 국회의원들은 법을 밥먹듯 어겨도 태연자약, 후안무치한 자세이다.
실망안겨준 私薦들 … ‘방탄공천’과 ‘표적공천’이라니
일반적으로 알려진 ‘국회의원 특권’ 가운데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선거구 획정’이다. 선거구 획정 기한을 어긴 것이야말로 특권 중의 특권, 최고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신인들을 헷갈리게 하고, 자신들만 기득권 우산 아래서 유리하게 선거를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은 공천에서도 실망을 안겨주었다. 겉으로는 시스템 공천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영입공천, 방탄공천을 해 ‘사천(私薦)’과 다름없다는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은 이재명 지키기를 위한 ‘비명 배제’ ‘친명 단독공천’을 일삼았고, 끝내는 “나갈테면 나가라”로 마무리해가고 있다. 국민의힘은 김건희 특검 재표결을 부결시키기 위해 혁신위의 “바꿔” 주장을 저버리고 초선의원들 위주의 버리기와 ‘3무공천’을 했다는 평가이다. 진중한 정치보다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가벼운 ‘재치’에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모두 개혁과는 거리가 멀었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각기 다른 현안을 안고 있기 때문에 22대 국회 역시 여전히 ‘적대적 동거’를 하면서 ‘양극단 대결’로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꿈’ 실현할 청년 외면해선 정치발전 안돼
그러다 보니 공천과정에서 세 가지 문제를 소홀히 하고 말았다. 하여 지금부터라도 이들 과제에 집중하여 22대 국회가 발전적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첫째, 청년들을 등용하는 데에 소홀히 했다. 겨우 5% 내외였다. 미래의 주인공인 청년에게는 현실만 쫓는 기성세대에겐 없는 원대한 ‘꿈’이 있다. 현대사회는 그 꿈이 거침없이 실현되는 시대이다. 지난 시대를 되돌아 보자. 정치적으로는 1215년 마그나카르타 이후 자유·평등·박애가 주창된 1789년 프랑스대혁명까지 574년이 걸렸고, 유엔이 1995년 남녀평등지수를 개발하기까지 206년으로 단축됐다. 한국에서도 1961년 군사독재 시작 이후 1998년 민주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기까지 37년이 걸렸다. 500년 왕정과 비교하면 크게 단축된 것이다. 과학발전도 마찬가지다. 1760년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1946년 최초의 컴퓨터가 등장하기까지 186년, 다시 1981년 IBM이 개인용 컴퓨터(PC)를 보급하기 시작하기까지 35년, 2007년 애플이 주머니 속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을 보급하기까지 26년, 그리고 2022년 챗GPT의 등장까지 15년 등 빠른 속도로 시간을 좁혀가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후 또 얼마나 빨리 예상치 못한 문명의 이기(利器)가 등장할지 모를 지경이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적응할 신인류가 바로 청년이다. AI라는 기계(기성세대가 볼 때는 불안정한 괴물?)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세대가 청년세대이다. 그런 시대가 전개되고 있는데 청년을 제외하고서 무슨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20~30대 청년을 장관자리에 앉히는 일은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청년들이 국회에 진입하여 장관들을 상대로 가시돋힌 질문으로 정책을 비판해 나간다면 전문성을 인정받아 미래를 설계하는 장관자리에 충분히 앉을 수 있을 것이다.
정당들이 유명인을 인재영입하는 것은 선거를 ‘흥행’정도로 우습게 보기 때문이다. 영입인재들은 처음에는 거수기로 이용되다가 이해관계에 따라 떠나버리기 때문에 장기적인 정치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전문성과 추진력이 있는 청년들을 정치학교를 통해 키워내 등용해야 안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치를 주도해 갈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청년들의 국회 진입은 절대 필요하다. 공천에서 소홀히 했더라도 기왕에 출마한 청년들이나마 당선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3인의 여전사’ ‘표적공천’ ‘한강벨트’ ‘경남벨트’ 같은 ‘선거전술’에서 벗어나서 ‘미래전략’을 생각해야 한다.
영국의회처럼 일문일답式 토론문화 도입해야
둘째, 정당 간의 정책토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는 국정(國政)을 논하는 국회의원을 뽑는 정치행사이다. 각 정당이 발표하고 있는 공약(公約)을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런 공약들이 과연 실현될 수 있는 건지, 예산은 어떻게 조달하겠다는 건지 등을 알 수 없다. 발표만으론 공약(空約)이 될 게 뻔하다. 하여 정책토론을 통해 국민이 타당성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는 대부분 ‘대독정치’였다. 국회의원들은 보좌관이 써준 글을 가지고 질문하고, 장관들은 부하 관료들이 작성한 답변서를 읽는데 그쳐왔다. 이래가지고선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필자는 영국의 의회 본회의 장면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토론문화라고 생각했다. 영국의회는 캐비닛과 섀도케비닛 의원들이 폭 2미터 너비의 탁자 양쪽에 줄줄이 마주 앉아서 토론하는 게 보편화 되어 있다. 주로 수상과 야당 당수가 토론을 벌이긴 하지만 장관과 야당의 예비내각 의원 두 사람이 일문일답식 토론도 하므로 국정에 대한 전문성이 제대로 드러나고, 국민도 이해하기 쉽다. 일괄질문에 일괄답변을 하여 핵심이 흐려지고,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 부분도 많은 토론문화는 지양되어야 한다.
국민이 정책을 판단하려면 방송토론이나 국회 토론이 많아야 한다. 하여 투표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기간동안이나마 토론하는 정치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지 않으면 스스로 “벌 받겠다” 선언해야
셋째, 국회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과 실행방안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정치개혁은 국회의원의 특권을 내려놓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본다. 필자는 2월 8일자 본란에서 ‘이런 국회, 국민이 만들어야 한다’라는 제목으로 국회의원이 없애야 할 특권을 제시한 바 있다. 하루아침에 특권을 모두 내려놓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여 몇 가지 부분만이라도 실천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의석수를 줄이는 것은 헌법을 개정과 관련이 있으므로 공연히 여기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특권을 줄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특권은 중기업 대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에서는 우스갯말로 부부 공무원, 부부 교사들을 소규모 중소기업 대표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정적 수입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이보다 훨씬 규모가 큰 중기업 대표, 또는 대기업 월급쟁이 사장 수준이다. 높은 연봉에 자동차 연료비, 철도·항공료는 물론 우편요금까지 국가로부터 지원받고, 부하 직원(보좌관 및 비서) 7명의 월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또 4년 동안 5억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고, 1년의 3분의 1 정도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정기회를 제외하고 짝수 월에만 임시회 개회) 자금조달 걱정을 할 필요까지 없으니 ‘로또’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특권 내려놓기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천 계획을 발표한 뒤, 실천하지 않으면 스스로 벌을 받겠다고 선언까지 해야 한다. 대신 국정자료의 수집과 분석 등 국회의원의 고유 권한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국회 내의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 도서관, 미래연구원 등 기관이 구체적으로 보좌하도록 공적 기능을 강화하면 된다.
‘3金’ 넘어서는 정치 … ‘莫如樹人’하는 정당 택해야
과거에는 면책특권을 이용하여 국회에서 합법적인 민주화운동을 하는 게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했으나 이제는 아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민주화운동 때문에 고난을 겪었던 인물들이 아니다. 카리스마로 정치하는 시대는 지났다. 타협과 협력의 시대이다. 지금 할 일은 민주적 정치 체제의 유지, 세계 10위권에 걸맞는 사회복지정책 실현, 추격산업에서 선도산업으로 체질 혁신, 시시각각 돌변하는 국제적 위기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일이다. 여기에 순발력을 가진 젊은 인재들을 키워내는 것도 중요한 임무이다.
제3지대 정당들도 국회에서 거대 양당을 견제하고 타협과 협력의 캐스팅 보트를 쥐려면 청년 정치인들에게 선거 참여의 기회를 더 많이 줘야 한다. 그리하여 기성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유권자들이 참신하고 미래지향적인 청년들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어야 한다.
관포지교로 유명한 관중(管仲)은 이런 말을 남겼다. ‘곡식을 심는 것은 일 년 계획이고, 나무를 심는 일은 십 년 계획이며, 사람을 키우는 것은 백 년 계획(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終身之計 莫如樹人)’이라고 했다. 국민은 어느 정당이 ‘막여수인’하는지 똑바로 지켜보고 선택해야 한다.
김 성(시사평론가)
< 데일리스포츠한국 2024. 03. 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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