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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47회)의 관풍(觀風) - 78년만에 한(恨)풀린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위령비… 한일 교차참배 정례화로 이어지길
작성자운영자 작성일2023/06/29 11:14 조회수: 227

김성(47회)의 관풍(觀風) - 78년만에 한(恨)풀린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위령비… 한일 교차참배 정례화로 이어지길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지난 2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안에 있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공동참배함으로써 한일 양국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대통령이 이 위령탑을 참배한 것은 사상 처음이며, 일본 총리로는 오부치 총리 이후 두 번째이다. 주변에 있던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피폭 78년만에, 위령비가 세워진지 53년만에 피해자와 가해자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함께 참배하는 모습을 보며 감격의 눈물 흘렸다.

출발부터 차별 … 기념공원 바깥에 세워져

히로시마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45년 8월 6일 미 공군의 핵폭탄 투하로 시민 35만명이 피폭되고 14만명이 숨졌다. 히로시마는 당시에 군사도시이고, 미쓰비시 조선소도 있어 강제동원된 군인, 군속, 노동자, 동원 학생, 일반 시민 등 조선인이 10만여 명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2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9일 폭격을 당한 나가사키에서는 7만 조선인 가운데 1만 명이 숨졌다.

일본정부는 1949년 피폭 구역을 ‘평화기념공원’으로 이름지었다. 이후 피해를 입은 학교와 기관·단체들의 위령비와 기념비들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히로시마 거주 한국인들은 원폭 피해를 본지 22년 뒤인 1967년 ‘히로시마한국인희생자위령비건립위원회’를 조직하고 건립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당국이 갑자기 평화기념공원 구역 안에 이미 많은 위령비와 기념비가 설치되어 더 이상 허가할 수 없다고 해 어쩔 수 없이 평화기념공원 바깥 하천 건너편에 세울 수밖에 없게 됐다. 위령비가 세워진 곳은 고종의 손자 이우가 일제에 의해 일본군 중령이 되어 히로시마 군부대 근무지로 출근하다 폭격 다음날 숨진 장소였다. 위령비는 결국 재일한국인의 모금으로 1970년 4월 10일 건립되었다. 위령비는 그 이후 한(恨)많은 사연을 간직한 상징물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방일 계기 기념공원 내로 이전

평화기념공원에서 일본인은 8월 6일에, 한국인은 하루 앞선 5일에 추도식을 가져왔다. 건립 이후에도 재일 한국인과 일본인 시민단체들은 “위령비마저 차별의 상징이 되고 있다”며 평화기념공원 안으로 옮겨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1990년 5월 24일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국빈방문했을 때 자신의 보좌관을 이곳에 보내 참배토록 했다. 그러자 히로시마시는 “8월 6일까지 한국인 위령비를 평화공원 구역 안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민단과 조총련이 합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이전계획은 중단되고 말았다.

1998년 10월 8일 일본을 국빈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함께 한일 간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자며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처럼 한일관계가 개선되자 공동선언 두 달 뒤인 1998년 12월 히로시마 시당국이 위령비의 이전을 승인해 1999년 7월 21일에 평화기념공원 안으로 옮겨지게 됐다. 건립 19년만에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이 해 8월 6일 추도식에 참석했던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위령비 이전 소식을 전해 듣고 예고 없이 한국인 위령비를 참배함으로써 최초로 참배한 일본 총리가 되었다.

2016년 5월 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했을 때에도 한국인 위령비에 참배할 것을 은근히 기대했으나 연설에서 사과는 하지 않고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과 미국인도 피해를 입었다”고만 말하고 떠났다. 2019년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을때는 한국인 원폭피해자의 손을 잡아주면서 위로해 주었다. 2021년에는 나가사키 평화기념공원에도 한국인 위령비가 세워졌다.

결국 노태우와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면서 한국인 위령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다시 24년만에 두 나라 정상이 최초로 공동참배하는 한 차원 높은 행사를 갖게 됐다.

방화·페인트칠·나무 훼손으로 수난 계속

그러나 이 위령비는 끊임없이 많은 시련을 겪었다. 1990년 5월과 1992년 3월에 누군가에 의해 위령비 헌화대에 화재가 발생했고, 평화기념공원 안으로 들어 온 뒤인 1999년 10월에는 위령비 기단인 거북상 머리에 오렌지색 형광페인트가 뿌려졌다. 2014년 5월에는 한국의 고려대와 일본의 와세다대학 재학생들이 2011년 심어둔 조선오엽송(잣나무 일종)이 뽑혀져 2015년 70주년 위령제때 다시 심었다. 2017년 4월에는 무궁화 3그루가 훼손됐고, 2018년 10월에는 위령비 인근에서 낙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가해국 반성 없이 피해국 코스프레만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은 일본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1989년 필자가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우리 위령비는 평화기념공원 바깥 하천 너머에서 피폭 상징물인 원폭돔을 응시하며 원망하고 있는 듯했다. 평화기념자료관에는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느낄 수 있는 실물 자료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원자폭탄의 폭격을 당하게 된 이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권 인류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난징 학살을 저지르고,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어 창씨개명까지 했던 지난 역사는 덮어버렸다. 또 독일이 1945년 5월에 이미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쓰시로 대본영 건축을 계속하고, 태평양과 오키나와 섬들에서 옥쇄(玉碎)까지 해 가며 최후의 발악을 했다. 하여 무의미한 전쟁으로 더 이상의 인명피해를 내지 않기 위해 원폭투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없었다. 그래 평화기념공원을 둘러보면서 느낀 점은 인류에게 사과하는 태도 보다는 일본이 피해국이라는 논리만을 내세우며, 한편으로 앞으로는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이 오히려 많이 담겨있는 것처럼 비춰졌다. 히로시마 주민들은 전쟁을 일으킨 당시 일본 군국주의자들과 미국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는 반면, 중앙정부나 정치인들은 겉으로 유일한 ‘원폭 피해국’ 코스프레를 하면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회 가입과 재무장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시다 총리가 이번에 공동참배를 제안한 것도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을 위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안보·경제 측면에서 아시아를 이끄는 지도자임을 보여주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히로시마에서 G7회의를 하면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추진하는 것은 책임있는 국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원폭의 피해를 본 국가로서 국내에서 피해를 소화하려고 하지 않고, 80년만에 다시 전 세계에 피해를 끼치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정부 서대문형무소 참배로 이어져야

한일 정상의 공동참배를 계기로 향후 과제를 제안해 본다.

첫째, 일본의 고위층이 한국의 서대문형무소나 제암리를 방문하여 한국 고위층과 함께 참배하는 일이다. 일본정부는 지금도 강제징용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인 원폭 피해자 상당수가 강제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공동참배를 제안하고 성사시켰다. 이제는 강제동원을 기정사실로 하고 호혜 원칙에 따라 공동참배도 정례화 해야 한다. 이러한 참배는 하토야마 전 일본총리가 한 바 있으며, 독일의 브란트 전 수상이 폴란드에서 무릎을 꿇고 참배한 장면은 세기적인 참회의 이벤트로 역사에 남아있다. 한국과 일본도 양국을 오가면서 이런 참배를 지속함으로써 상대방 역사와 아픔을 이해하고, 전쟁없는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청소년 교류를 활성화해 밝은 미래사회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이미 그 방향이 제시된 바 있다. 즉 정상회담 연 1회 이상 실시, 청소년 교류 확대 등 5개 분야 43개 항목의 '행동계획(Action Plan)'이 채택됐었다. 또 한국 내 일본문화 개방, 한국 공과대학 학부 유학생의 일본 파견 등도 약속했다. 중단되었던 이런 일이 재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공동참배를 계기로 일본 정치인들의 잘못된 입놀림이나 역사왜곡으로 한일관계가 후퇴하는 일도 사라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 성(시사평론가)

< 데일리스포츠한국 2023.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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